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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 등에 대한 주관적인 리뷰가 올라오는 공간입니다 그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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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늘색 볼드체로 쓰인 글씨는 책 제목이며, 링크를 걸어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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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추천하는 책들은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으로 선정된 책들입니다.
도서 취향이란 제각각이기 때문에 제가 추천한 책이 취향에 맞지 않으실 수도 있어요.
취향에 맞지 않으신다고 무조건 덮지 마시고 다른 장르문학에 용감하게 부딪쳐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분명 제가 사직을 결심한 것은 마나미의 죽음이 원인입니다.
하지만 만약 마나미의 죽음이 정말 사고였다면,
슬픔을 달래기 위해서도, 그리고 제가 저지른 죄를 반성하기 위해서도
교사직을 계속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사직하는가?
마나미는 사고로 죽은 게 아니라 우리 반 학생에게 살해당했기 때문입니다.
<고백> 中, 미나토 가나에

 인용구는 얼마 전 영화로 개봉해 일본 열도에서 화제를 불러모은 소설의 일부입니다. 소설과 동명의 영화는 당시 '내 딸을 죽인 사람은 우리 반에 있습니다!' 라는 홍보 문구로 큰 관심을 모았었지요. 바로 미나토 가나에고백입니다 :)

 한 학년의 마지막 날, 사임을 앞둔 여교사가 자신의 반 학생들에게 충격적인 사실을 고백합니다. 학교에서 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자신의 딸이, 사실은 사고로 죽은 것이 아니라 우리 반의 학생에 의해 살해당했다고요. 뜻밖의 고백에 놀란 학생들의 소요는 아랑곳 않고 여교사는 말을 잇습니다. 자신이 이 사실을 고발하더라도 결국 소년법에 의해 보호받는 나이의 두 학생은 미미한 처분만을 받고 풀려나게 될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법에 의한 처분을 원치 않았다고요. 그 대신 여교사가 택한 '복수'는 실로 충격적인 방법입니다. 범인의 우유에 에이즈에 감염된 혈액을 섞어놓았던 것이지요. 충격에 휩싸인 학생들을 뒤로 하고 여교사의 고백은 끝을 맺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이야기는 여교사의 고백인 '성직자'편에 이어 순교자-자애자-구도자-신봉자-전도자로 이어지며 이 충격적인 사건에 엮인 사람들의 고백을 담습니다. 여교사와 범인인 학생들의 고백은 물론이고 그 사건을 옆에서 지켜봐야 했던 동급생과 범인의 누나, 어머니 등의 시점으로 이어지는 고백은 한 가지 살인사건 속에 숨겨진 또다른 이야기를 그립니다. 언뜻 사회파 추리소설의 대가인 미야베 미유키이유를 떠올리시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미미여사의 '이유'에서 한 가지 살인사건에 얽힌 수많은 사람들의 사정과 그들을 그렇게 만들고 만 사회적 배경을 그리고 있다면 이 소설에서는 좀 더 개인적이고 은밀한 개개인의 사정을 심도 깊게 다루지요. 어쩌면 그래서 이 이기적인 인물들을 우리는 동정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동
정이라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이 소설을 읽으며 느낀 것은 모든 인물상들이 정말 '인간적으로 이기적인' 인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인물의 행동에 공감하고 그것을 이해한다는 뜻이 아니라, 남의 눈에 있는 말뚝보다 내 눈에 있는 가시가 더 아픈 '인간'으로서 자신의 아픔과 상처에만 급급해 남의 사정은 돌볼 줄 모르는 인물상들에 묘한 연민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지요. 교사로서 아이들을 계도하고 훈육해야 하지만 어머니로서의 아픔을 극복할 수 없었던 사람이나, 어릴 적 엄마의 비뚤어진 애정을 받고 자라 오로지 이젠 얼굴을 볼 수도 없는 어머니의 애정을 갈구하는 소년, 혹은 아들에게 모든 기대를 걸고 있는 어머니. 하지만 인간적으로 드는 연민과 동정과는 별개로 비뚤게 자라난 그들의 자아는 결국 자신의 죄값에 걸맞는 결말을 불러오게 되지요.

 소설은 복수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복수가 전부인 이야기는 아닙니다. 복수하는 행위 자체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거나 혹은 복수의 무용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가 아니지요. 또한 여교사의 입을 빌어 미성년은 어떤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더라도 제재할 수 없는 소년법에 대한 비판도 설득력있게 그려내지만 그 역시 소설의 주제는 아닙니다. 어린 나이에 어이없이 숨져버린 딸의 복수를 위해 나선 여교사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그 사건의 이면에 숨겨진 사람들의 불편한 진실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왜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 이 아이들을 이렇게 만든 것은 누구인지... 

 간혹 추리소설을 읽으며 등장인물의 행동에 '왜?' 라는 의문이 드셨다면 이 책만큼 좋은 책은 없겠네요.
일본 특유의 감성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그려진 인물상만큼은 현재의 한국에도 충분히 존재할 만한 현실감 있는 캐릭터이기에 더욱 아무 생각 없이는 읽히지 않는 책일 겁니다. 곰곰이 생각하며 읽으시고 영화도 꼭 보시길 권합니다. 책도 영화도, 특히 영화는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2차 창작을 한 영화 중 드물게도 수작이거든요. 더운 여름, 시원한 추리소설과 함께하는 밤 되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D










이 글은 매거진덕(Magazine Duck)에서 화요일마다 연재되는 추리소설 특집글입니다
매주 화요일, 매거진덕과 이곳에 동시에 게시됩니다

Posted by 그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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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추천하는 책들은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으로 선정된 책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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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그는 살인범에게 복수했다.
둘째, 그는 살인을 실행했다.
셋째, 그는 그 과정에서 살해당했다.

<이와 손톱> 中, 빌 S. 밸린저

 인상적인 인용구지요? 밸린저의 소설 이와 손톱의 프롤로그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현대에 이르러 다양한 추리소설이 출간되고 소설들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재생산되면서 다양한 형식으로 독자를 속이기 위해 노력하는 수많은 추리물들을 접해보셨을텐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임팩트있는 구절로 소설의 서두를 여는 작품은 몇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일전에 소개했던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추리소설을 모르는 사람에게도 제목은 낯익은, 일종의 '대중화'된 추리소설이었다면 이번에 소개할 빌 S. 밸린저의 '이와 손톱'은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종의 Must read 목록인 책이라고 할 수 있지요. 처음 보시는 분은 얼핏 봐 작가의 이름도, 책 제목도 낯선 것 같으시겠지만 그야말로 명작 반열에 드는 책이니 아직 접해보지 못한 분이시라면 당장 집어드시길 권하고 싶네요 :)


 소설은 프롤로그를 지나 법정에서의 치열한 싸움을 예고하는 1장으로 시작합니다. 읽다보면 아시겠지만 25장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한 살인 용의자를 대상으로 한 법정에서의 논박과 루 마운틴이라는 마술사의 이야기가 교차하여 서술됩니다. 지금이야 교차 서술을 소설 전체의 서술방식으로 선택한 소설들이 많지만, 55년 당시에는 상당히 새롭고 충격적인, 또한 독자의 호기심을 무척이나 불러일으키는 방법이었을겁니다. 게다가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이야기들이 진행됨에 따라 점차 그 꼬인 실타래를 드러내는데 그 과정이 참으로 흥미진진하지요.



 법정. 변호사와 검사는 피고인의 '범죄 여부'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 이미 갖춰진 증거가 있고 그 행위가 유죄냐 무죄냐를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검사는 피고인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하고, 변호인은 그에 대해 증거가 없다고 맞섭니다. 얼핏 들으면 말이 되지 않는 것 같지요. 법정에서 형사재판을 받을 정도의 범죄라면 기소혐의점이 분명했을테니까요. 하지만 사건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피고인의 운전기사이자 집사로 일하는 아이샴 레딕이 어느 날 사라지는데, 그가 마지막으로 목격되었다는 지하실에는 그의 손가락과 혈흔만이 남아있을 뿐 시체도, 살인의 증거도, 목격자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냥 단순한 실종일까요? 그렇다기엔 속속들이 밝혀지는 피살자의 생전의 행보가 심상치 않습니다. 갑자기 많아진 씀씀이, '시체가 어디있는지 안다'던 의미심장한 발언, 결정적으로 피의자에게 받았다던 돈뭉치! 피의자를 협박해 얻어낸 돈으로 거하게 쇼핑을 즐기는 피해자가 상상되지 않으십니까? 살인을 증명할 최소한의 증거도 발견되지 않은 사건. 과연 이 사건의 전말은 무엇일까요?


 한편 루는 재능있는 마술사입니다. 뉴욕 7번가에서 탤리 쇼라는 여인을 만나 행복한 결혼생활을 영위하려는 찰나 그 여인에게 어마어마한 비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돌아가신 삼촌에게 넘겨받은 위조화폐 동판을 갖고 있다는 거지요. 그 동판을 노리는 그린리프라는 자가 있다는 것, 그리고 탤리의 삼촌 역시 그 자에게 살해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안지도 얼마 되지 않아 탤리는 사망하고 맙니다. 루는 본능적으로 이것이 살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범인, '그린리프'를 찾아내 복수하기 위해 긴 여정을 떠나게 되지요.


 두 가지의 이야기가 교차서술되면서 계속 진행되고, 이내 독자는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이 두 가지의 이야기가 긴밀한 관계를 갖고 연결됨을 알게 됩니다.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재판의 결과는, 그리고 진상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한편 루는 자신의 아내를 잔인하게 살해한 범인 그린리프를 잡아 결국 복수에 성공했을까요? 궁금하신 분은 지금 당장 서점이나 도서관으로 달려가세요. 그리고 뽑아드시고 읽으세요!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거에요 :D




 읽어도, 읽지 않아도 관계없는 사족 001
. 이 소설이 최초 발간되었을 때 출판사에서는 초판에 한정해 결말 부분을 봉인해두고 그 부분을 열지 않고 가져오면 환불을 해 주는 대담한 마케팅을 했다고 합니다. 이 마케팅은 미야베 미유키의 쓸쓸한 사냥꾼을 비롯해 여러 가지 매체에서 심심찮게 회자되고 있을 정도로 대담하고 공격적인 방법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독자들이 읽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대단한 결말을 준비했다는 자신감이며 결말을 읽지 않으면 이 소설을 다 보지 않은거라는 자부심이지요. 또 한 편으로는 독자들의 호기심을 더욱 증가시키는 방법이기도 했구요. 사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소설이기도 했고 말입니다.


 읽어도, 읽지 않아도 관계없는 사족 002
. 제목에 의아함을 갖는 분들이 계실텐데, 이와 손톱은 물론 사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단서를 뜻하기도 하지만 영문으로 tooth and nail이라는 말을 살짝 꼬아 낸 말입니다. tooth and nail은 '맹렬하게, 갖은 수단으로'라는 뜻을 가진다고 하네요. 원문에서 오는 묘미를 느낄 수 없는 것 같아 살짝 아쉽습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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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제가 추천하는 책들은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으로 선정된 책들입니다.
도서 취향이란 제각각이기 때문에 제가 추천한 책이 취향에 맞지 않으실 수도 있어요T-T
 취향에 맞지 않으신다고 무조건 덮지 마시고 다른 장르문학에 용감하게 부딪쳐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추리소설에 관심있으신 분들이라면 언제고 한 번쯤은 '세계 3대 추리소설'이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사실 이 세계 3대 추리소설은 일본 요미우리에서 선정한 해외 추리소설 베스트 20의 1, 2, 3위가 잘못 알려진 것에 지나진 않긴 합니다만, 확실히 이 세 가지 추리소설은 추리소설 초심자라면 제일 먼저 읽어야 할 추리소설군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책이지요. 윌리엄 아이리시(코넬 울리치)환상의 여인엘러리 퀸Y의 비극, 그리고 마지막이 바로 제가 지금 소개하려는 애거서 크리스티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입니다. 

 세 가지 소설 중에서도 특히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충실한 소설적 구성과 기발한 결말로 당시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으며, 현대에 이르러서도 영화와 소설을 비롯한 수많은 작품에서 오마주되고 있어요. 현대의 다양한 매체에서 재생산됨으로서 대중들에게 향유되는 것이 고전의 가치라면 추리소설 중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만큼 고전의 가치를 제대로 증명하고 있는 작품은 없다고 생각됩니다 :)

 소설은 호화로운 저택이 세워져있는 병정 섬에 열 사람이 모여들면서 시작합니다. 갖가지 거짓된 이유로 이 섬으로 불려온 이 열 사람은 직업도, 사회적 지위도, 성별도, 성격과 생김새도 모두 다른 사람들이지요. 하지만 저택으로 초대된 첫 날 의문의 목소리는 여기 불려온 열 명은 모두 누군가의 죽음에 책임이 있거나 누군가를 죽게 한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여기 있는 모두가 타인의 살해에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다는 것이지요. 전원이 그 목소리에서 받은 섬뜩한 느낌을 채 떨쳐버리기도 전에 한 사람이 술에 타 놓은 청산가리로 독살당하고, 이내 남은 사람들은 연이은 죽음이 방에 걸려있는 오랜 자장가와 같은 순서로 이루어진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열 꼬마 병정이 밥을 먹으러 나갔네.
하나가 사레들었네. 그리고 아홉이 남았네.
아홉 꼬마 병정이 밤이 늦도록 안 잤네.
하나가 늦잠을 잤네. 그리고 여덟이 남았네.
여덟 꼬마 병정이 데번에 여행 갔네.
하나가 거기 남았네. 그리고 일곱이 남았네.
일곱 꼬마 병정이 도끼로 장작 팼네.
하나가 두 동강 났네. 그리고 여섯이 남았네.
여섯 꼬마 병정이 벌통 갖고 놀았네.
하나가 벌에 쏘였네. 그리고 다섯이 남았네.
다섯 꼬마 병정이 법률 공부 했다네.
하나가 법원에 갔네. 그리고 네 명이 남았네.
네 꼬마 병정이 바다 향해 나갔네.
훈제 청어가 잡아먹었네. 그리고 세 명이 남았네.
세 꼬마 병정이 동물원 산책 했네.
큰 곰이 잡아갔네. 그리고 두 명이 남았네.
두 꼬마 병정이 볕을 쬐고 있었네.
하나가 홀랑 탔네. 그리고 하나가 남았네.
한 꼬마 병정이 외롭게 남았다네.
그가 가서 목을 맸네. 그리고 아무도 없었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中, 애거서 크리스티



 애거서 크리스티가 직접 마더 구스에 나오는 영시를 소설과 걸맞게 수정한 이 시는 독자에게 미스터리를 제시할 뿐만 아니라 소설 전반의 섬뜩하고 음산한 분위기를 이끕니다. 범인이 누구인지, 왜 이런 일을 저지르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의 무자비한 심판 아래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희생자들의 운명을 노래하고 있는 것만 같아 섬칫하기까지 하지요. 결국 아무도 살아남지 못하리라고 예고하는 것과 같으니까요.

 범인은 누구일까요? 그는 왜 이런 일을 저지르는 걸까요? 여러분이 편 마지막장에 남은 최후의 한 사람, 그가 범인일까요? '그리고 아무도 없었네' 라고 노래하는 저 시가 무엇을 예고하고 있을까요? 책을 펼쳐 읽다보면 이런 궁금증이 무럭무럭 솟아오르는 걸 느낄 수 있으실 겁니다. 범인의 정체도 목적도 모호한 상황에서 교묘하게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글을 이끌어나가는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의 솜씨는 가히 발군이니까요. 궁금하시다면 책이 이끄는대로 따라가시면 됩니다. 준비된, 하지만 예상치 못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거에요 :)

 그럼 이 책을 모티프로 하거나 이 책에 오마주를 바치는 다른 매체들을 몇 가지 살펴보기로 할까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이 소설은 혁신적인 결말로 당시 독자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단지 당시의 대중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라 오늘날의 감독과 작가 등 현대 대중문화를 이끄는 사람들도 이 책에 대한 찬사를 보내곤 하는데요, 그 중 유명한 몇 가지만 꼽아볼까 합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영화 아이덴티티의 스틸컷입니다. 이 영화는 개봉 초기부터 감독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서 모티프를 따 온 것이라고 밝혀 화제가 되었었지요. 실제로 영화 자체의 결말은 책과 전혀 상관이 없지만 구성은 상당히 흡사하게 흘러갑니다. 영화 내에서 사건이 일어나는 외딴 여관에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모이고 이유를 모른채 사람들이 살해되기 시작하죠.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서 소설적 장치로서 효과적으로 사용한 클로즈드 서클 - 밀실살인보다 큰 범주의 '고립된 상황' 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폭설이 내리는 산 위의 산장, 배가 끊긴 외딴 섬, 연락 수단이 모두 끊긴 별장 등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다룬 추리소설이 바로 클로즈드 서클 상황을 바탕으로 한 추리소설이에요. 추리소설에는 이런 상황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자주 다루는데, 이런 경우 사건의 피해자와 범인을 한정지을 수 있으며 알리바이 검증이 쉬워지기 때문이지요 - 상황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은 물론이고, 범인이 정체를 감추기 위해 사용한 트릭도 책과 상통하는 점이 있습니다. 만일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감독이 영화에 숨겨놓은 장치를 찾으며 보는 것도 꽤 즐거운 일이 될 것 같아요.

 아야츠지 유키토의 소설 십각관의 살인 역시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 보내는 오마주인 것으로 유명하죠. 외딴 섬으로 여행을 간 일행, 살인 예고, 그리고 예고대로 벌어지는 살인... 키워드만 들어도 벌써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 대한 오마주인 것이 일목요연하게 보이지 않나요? 더군다나 이 섬으로 여행을 간 미스터리 동호회 회원들은 동호회 전통에 따라 추리소설 고전 황금기의 작가들 이름을 별명으로 사용합니다. 아가사(애거서 크리스티)가 등장하는 건 물론이구요. 사회파 미스터리가 만연하던 당시의 일본 추리소설계에 고전 추리소설과 같은 트릭을 기본으로 하는 추리소설로 승부하겠다는 작가의 의지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요. 물론 그 중에서도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을 보며 강한 결심을 굳히지 않았을까요? 아이덴티티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 역시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구성 위해 작가가 새롭게 자신만의 세계를 펼쳐냅니다. 한 번 읽어보시고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른지 한번 비교해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마지막으로 비교해드릴 매체는 작년, MBC에서 방송했던 무한도전 7(세븐) 특집입니다. 당시에도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 대한 오마주라고 인터넷에 비교하는 글이 올라왔었던 걸로 기억해요.


 방송을 보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멤버들이 방 안에 들어오고 나서 방문은 밖에서 잠깁니다. 크리스티의 소설에서 등장인물들이 섬 안에 고립된 것과 마찬가지의 상황, 즉 클로즈드 서클 상황을 만드는 것이죠. 또한 서로를 불신함으로 인해 연속적으로 희생자가 나오고 단 한명만이 남는 것 역시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서 그대로 찾아볼 수 있는 설정입니다.

 캡처에서 볼 수 있는 방송 마지막 장면은 더욱 노골적이지요. 혼자 남은 마지막 희생자, 살해당한 것을 나타내듯 인형에 뭍은 혈흔, 환청,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라는 자막도요. 스포가 될까봐 넣지 않았지만 소설과 정말 완전히 같은 장면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떠신가요? 소설 자체의 내용도 재밌고 흥미롭거니와, 이렇게 다양한 장르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변주되고 있는 작품이니 소설적 구성이 얼마나 탄탄하고 충실한지는 두 번 말씀드리지 않아도 아시겠지요! 읽으셨던 분들은 다른 매체와 비교하며 다시 한번 곱씹어,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은 망설이지 않고 읽을 만한 작품인 것 같습니다. 더운 여름, 시원한 추리소설과 함께하는 밤 되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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